보물창고/나의사진방

Kloster Ettal(에탈수도원)

윤일란 2014. 8. 24. 19:09

 

 

'에탈수도원'은 이 알프스 산록 해발 900m 지점 암머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원으로 가는 '로만틱 가도' 주변. 도나우강과 마인강 지류들이

흐르는 계곡과 알프스 흰봉우리들이 구름 한 점 없는 쪽빛하늘과

어우려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루드비히 황제는 세계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프랑스 아비뇽에 유배돼 있던 교황 요한 22세(1316~1334)는

 프랑스의 이권을 대변해 정치적 목적으로 1323년 루드비히 황제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에 반발한 황제는 이듬해 공의회를 소집, 요한 22세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공의회에 참석한 일부 신학자들은 '신앙인 공동체의 대표인 공의회가 교회에서 최고의 권한을 행사한다'며

 교황 공의회에 종속시키는 '공의회 우위설'을 주장했고,

독일인들은 교황 요한 22세의 반독일적 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었다.

 그 결과 '공의회 우위설'이 확산, 두 명의 교황(대립교황)이 등장하는 '서구 대이교'(1378~1417년)가 일어났고,

16세기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가톨릭 신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루드비히 황제는 교황 요한 22세와 한창 대립 중이던 1330년 에탈 수도원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수도원은 황제가 죽고도 한창 뒤인 1370년에 완공됐다.

 40년 만에 완공된 수도원 성당은 12각형 고딕양식 성당으로 제단에는

 루드비히 황제가 생전에 이탈리아 피사에서 직접 가져온 대리석 '성모자상'이 안치돼 있다.

 

 

 

 

 

 

 

 

 

 

 

 

 

 

 

Ettal은 '맹세의 계곡'이라는 뜻이며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1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맹세한 후 그 약속대로

1330년 4월 28일에 수도원을 설립해 '에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도원은 황제가 죽은 뒤인 1370년에 완공되었다고한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