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니치...Wagner 생가... 바그너는 4세 때 무대에 서고, 8세 때 음악에 대해 천재적 재주를 나타내었으며 13세 되는 해에는 비극 [로이바르트]를 쓰기 시작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우선 문학과 연극에 열중하였다. C. 베버의 오페라 [마탄(魔彈)의 사수]를 좋아했던 바그너는, L. 베토벤의 작품을 듣고 음악가가 될 것을 결심하였고, 18세에 라이프치히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C.T. 바인리히에게 작곡이론을 배웠다. 19세 때에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 초연(初演)하는 한편, 미완성 오페라 [혼례]에 착수하였다 (옮김) ![]() Minna planer...1836년 결혼한 부인, 여배우 바그너는 성악과 기악 등 여러 곡종(曲種)의 작품을 남겼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무대작품이다. [요정]에서부터 [로엔그린]에 이르는 전기의 작품은 베버와 베토벤의 영향하에 출발하여, 독일의 낭만적 오페라를 한걸음씩 끌어올려, 후기의 종합예술작품인 악극 양식을 준비해 갔다. 후기의 첫머리를 장식한 [예술과 혁명] [미래의 예술 작품] [오페라와 드라마]의 세 저작에서, 후기 작품의 지침이 된 완전한 인간의 표현이야말로 예술이라고 하였고, 인간의 표현능력인 육체•감정•오성(悟性)은 무도(舞蹈)•음악•문예의 세 가지 ![]() Hitler 와 이태리의 전제독재자 무쏘리니.... 독일, 일본, 이태리가 삼각동맹을 맺고 전쟁을 치루었지요. 세계역사상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히틀러가 이 Wagner를 가장 사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 곡을 좋아해서 참호에서 전쟁을 지휘하면서도 들었다고 합니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자랑하던 Wagner에게 심취됬던 것이었지요. Wagner의 이곡은 본의 아니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준 결과가 그래서 아마도 히틀러가 그의 음악에 심취하게된 동기가 되기도 한게 아닌가 하지요. 하여간 Wagner의 음악은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웅변적인 '무한선율'을 채택했기에 도발적인 히틀러의 광기와 잘 결합을 했는지도 모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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