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r Lindenbaum _ 보리수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e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uss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sst'' 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or'' ich''s rauschen:
Du fandest Ruhe dort!성문 앞 우물가에서(Am Brunnen vor dem Tore)
라는 제목으로도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가곡은
1822년에 빌헬름 뮐러(Wilhelm Mueller)가 쓴 시에
슈베르트(Schubert)가 1827년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곡은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Winterreise)
중에서 가장 널리 애창되는 가곡입니다
* Der Lindenbaum _ 보리수
Tölzer Knabenchor _ 퇼쩨르 소년합창단
슈베르트의 일생은 예술가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입니다.
그 아름다운 선율로 만인의 가슴에 위안을 안겨 준 사람이지만
그 자신 이승을 산 세월은 31년밖에 안 도지요.
그 짧은 생애에 가곡만 해도 6백 곡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가 일생을 통해서 얻은 보수는 57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 사람입니다..
그 재능에 어울리는 무대에 오른 일조차도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미완성 교향곡 >이나 은 그의 생전에는
한 번도 연주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한 남성의 영혼에 대하여 참으로
헌신적인 사모를 바친 여성은 여러 가지 전설에도 불구하고
아마 하나도 없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세상에 태어나서 아름다움을 주기만 하고 간 사람인것 같지요.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에서,
소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14남매의 13번째였다.
그 중의 아홉은 요절을 했지만, 어린 시절의 슈베르트가 얼마나 궁색한
살림 속에서 자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음악이 있었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여 슈베르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모여서 합주를 했다.
이따금 소리가 섞이면 그 것을 맨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슈베르트였다.
슈베르트는 누가 어떻게 틀렸다는 걸 지적하지는 않고, 다만
"아버지 어디가 좀 이상해요" (옮김)
슈베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얘깃거리가 되는 것은 얼마 동안 가정교사로 가서
피아노를 가르친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딸 카로리이네와의 연애 사건이다.
그 얘기는 영 화 <미완성 교향악>에서도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지만,
전기 작가들의 연구에서는 사실 무근으로 밝혀지고 있다.
로맨스는 없었다.
슈베르트는 그 귀족의 집에서 하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을 뿐이며,
비인에 돌아오자 불쾌한 경험을 잊어버리기 위해 친구들과
더불어 축배를 들었다.(옮김)
또 한 가지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직접 만난 일이 있다는 얘기에 관해서도
전기 작자에 따라 해석이 구구하다.
1827년 베토벤이 병석에 누웠을 때 문병을 갔다는 얘기인데,
베토벤이 슈베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보고서 칭찬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만난 일이 있는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이 작고하자 그 장례식의 횃불 행렬에
슈베르트가 참가한 것은 확실한 사실로 되어 있다.
그날 밤 선술집에 돌아온 슈베르트는 땅속에 잠든 거장의 명복을
빌어 건배를 하고,
다음에는 그 뒤를 따르는 자를 위해 건배를 했는데,
제일 먼저 베토벤의 뒤를 따를 사람은 다름 아닌 슈베르트 자신이었다.
바로 그 이듬해 가을, 하늘이 이승에 내린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그 불멸의 가곡 집 <겨울 나그네>를 남기고, 보리수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죽거든 베토벤 옆에 묻어 달라"
그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옮김)
독일,Tölzer Knabenchor _ 퇼쩨르 소년합창단...1956년 창단
* 보리수...한국어 가사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찬 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Nana mouskouri.....지금은 77세 할머니
1934년생.... 이 얼굴에 속지 마세요......^^
그리스태생
소개자체가 군더더기 같은 할머니...
1958년에 데뷰해서 2008년, 재작년에 50년 활동을 접었습니다.
대단한, 위대한 가수이지요.
노래를 너무 잘해서 잘 안들었는데...
이젠 다시 들어보고 싶어지곤 합니다.
참, 대단한 가수이지요.
1975년 이혼한후....2003년 70이 되어 재혼...
지금 스위스에서 조용히 여생을 즐기고 있다고.....
이 가수가 또 무엇으로 위대하냐?
무려 10개국어로 노래를 부른 가수 입니다.
Greek, French, English, German, Dutch, Italian, Spanish, Hebrew, Welsh
그리고 Maori 어.... 10개국어 version의 가수 였습니다..
잘 알고있는 나나 므스쿠리정말 맑고 깨끗한 목소리 을 가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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