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구성
1악장 : Allegro Maestoso (21:18) 2악장 : Allegro Espressivo (5:09) 3악장 : Rondo : Allegro Spiritoso (9:45)
파가니니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위의 다른 곡과는 다른 특질을 보이고 있다. 바이올린에 관한한 그의 파격성은 피아노에 있어서의 쇼팽의 그것과 비슷한 독특한 그만의 특성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악마에게 혼을 팔았다는, 1초에 12번의 음을 낼수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파가니니는 당시 현존하는 음악들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테크닉 위주의 곡을 작곡했다. 어렸을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의 결과로 얻은 유연한 긴 손가락 덕분에 파가니니는 감히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엄청난 기교로 무장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그가 구사한 기교의 총체는 그의 여섯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가장 유명한 1번에서 잘 드러난다. 이 곡은 파가니니 특유의 현란한 테크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3악장에서는 이것이 절정을 이룬다.
이 곡의 연주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장영주의 연주이다. 하지만 뮬로바의 연주는 기교의 구사에 바쁜 장영주에게서 느낄 수 없는 원숙함이 느껴져 새로운 느낌으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좋아하게 만든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원숙함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은 듣는 이에게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작품구성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6곡 정도 되었으나, 인쇄된 곡은 그 중 2곡이었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 바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다. 기교적인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화려하고 비르투오적이나 화음이나 형식에 있어서는 간단하고 형식적이다. 1811년에 파가니니가 29세가 되던 해 완성되었으며, 초연은 파가니니 자신의 연주로 이루어졌다고 짐작된다.
1악장은 D장조 4분의 4박자로 소나타 형식이며, 장대하지만 화려하고 변화가 가득해 듣는 사람에게 흥미로움을 전해주는 악장이다. 리드미컬하고 상쾌한 주제에 이은 행진곡풍의 전개부,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풍 활약 그리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노래와 연결되는 재현부는 화사한 바이올린의 기교를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웅대하고 극적인 곡이며, 단독 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파가니니의 놀라운 연주 기교가 담긴 '바이올린 협주곡 제 1 번'은 과연 이탈리아 작곡가 답게 노래하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을 아낌없이 몇 개의 주제로 쓰고 있다. 그 서정적인 달콤함이 출중한 기교 속에 극적으로 고양(高揚)되는 부분은 파가니니만의 솜씨이다.
파가니니는 자기가 직접 연주하기 위해 6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썻으나 오늘날 흔히 연주되는 작품은 제 1 번과 제 2 번 B 단조의 두 곡이며, 이밖에 제 4 번 D 단조 와 제 5번 A 단조를 가끔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제 1 번과 제 2 번의 두곡만 들으면 나머지곡은 듣지 않아도 된다. 이 두곡과 전 24곡으로 구성된"24개의 기상곡"(24 Cappricci per violino solo op.1)에 파가니니의 전모(全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 1 악장 Allegro maestoso
관현악 전주에 이어 바이올린 독주가 상쾌하게 제 1 주제를 연주하며 등장하여 선명한 기교로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나면 매끄럽고 달콤하게 노래하는 제 2 주제가 나타난다. 제 1 악장은 몇 개의 황홀한 선율이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며 듣는 이를 깊이 사로 잡는다.
제 2 악장 Adagio Espressivo
극적인 관현악으로 시작하여 표정 풍부한 독주가 부드러움 속에 열정을 담고 노래한다.
제 3 악장 Rondo ( Allegro Spritoso)
론도는 파가니니가 고안한 독특한 스타카토 주법의 주제를 경쾌하게 전개시키는 부분이 유명하다. 당시 사람들은 그 스타카토 주법에 깊이 매료 되었다고 한다.
독주 파트에 갖가지 기교와 아름다운 선율을 담아
언젠가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연주 중에 한 개의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없이 그대로 연주를 계속했는데 연주하고 있는 중에 다음 줄이 끊어지고, 세 번째 줄이 끊어지고, 마지막 줄도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바이올린은 크게 울리고 있었다. 파가니니가 아무리 명인이라고 하더라도, 줄이 모두 끊어진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있었는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때로는 그와 같은 곡예적인 연주로 청중의 갈채를 얻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솜씨라고 여겨지지 않는 초월적인 테크닉이 촛불의 조명에 의해서 떠오르는 악마적인 풍모가 함께 어울려, 무대에서 연주할 때의 파가니니는 소름이 끼쳐 바이올린의 마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당시 미신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사람들은 파가니니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있다는 소문으로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 공포감이 얼마나 컸는지는 파가니니가 죽은 뒤에 그 유해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화로 알 수 있다. 그는 1840년의 5월 27일에 남 프랑스의 니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해가 고향인 제노바에 운반되었는데 제노바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인수하면 악마의 재앙이 따른다고 생각하여 인수를 거절해 버렸다. 그래서 유해는 다시 니스로 되 보내졌는데 거기서도 역시 거절되어 마지막에는 겨우 지중해의 고도에 그 안식의 땅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한 가지 기능에 뛰어난다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지만 너무나 완전 무결함을 가지면 인간은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좋은 예가 바로 파가니니의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가니니는 자기가 연주하기 위한 6곡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수많은 바이올린 독주용의 소품을 작곡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널리 연주되는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다. 이 협주곡은 파가니니가 가장 사랑한 작품으로 작곡된 것은 파가니니의 나이 29세 때인 1811년이고 파가니니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 곡은 파가니니가 가진 모든 연주 기교를 담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갖가지 어려운 기교가 담겨있다. 전악장에 걸쳐서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그 중에서 제2악장은 전곡중의 백미로, 정열을 숨긴 서정적인 멜로디가 감동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