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왕(紳文王)-692
신문왕(紳文王) 신라 제31대 왕(재위 681-691). 휘(諱)는 정명(政明). 명지(明之). 자(字)는 일초(日招).문무왕의 맏아들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
王后) 비는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의딸 665년(신문왕 5)태자에 책봉
문무왕에 이어 즉위한 후 장인인 김흠돌이 모반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
김흠돌을 주살(誅殺)하고 비 김씨를 페위 시켰다.
682년 위화부령(位和府令) 2명을 두어 선거(選擧)사무를 맡게하고 국학(國學)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였으며 683년(신문왕 3)에 김흠운(金欽運)의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또 보덕왕(報德王) 안승(安勝)을 소판으로 기용하여 金씨 성(姓)을 하사하였고 이듬해 안승의 족자(族子) 대문(大文)이 금마저(金馬渚)에서 모반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고 그 땅을
금마군(金馬郡)으로 하여금 고구려 유민들을 분산 거주하게 하였다.
698년(신문왕 5)에 9주를 정비 하였고 서원소경(西原小京)을 폐지하고
조(組)를 주기로 개정하였다 또한 일본과 당나라 사이의 왕래가 잦아 문화 교류가 번성하는등 전성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