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 1786-1856
이조 말기의 고증학자(考證學者). 금석학자(金石學者). 서도가. 자는 원춘(元春). 호는 원당(院堂)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 등. 본관은 경주. 이조판서 노경(魯敬)의 아들 박제가(朴薺家)에게서 수업하고 1814년(순조 14)에 문과에 급제. 벼슬이 병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20세때 아버지를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당세에 거유(巨儒)로 명성을 떨치던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綱) 등과도 막연하게 지냈으며 완원은 자기가 지은 <소재필기(蘇齋筆記)>를 처음으로 초해서 완당에게 기승 까지 하였다. 1840년(현종 6)에 윤상도(尹尙度)의 옥(獄)에 관련되어 제주도로 유배 1851년(철종 2) 헌종묘천(憲宗廟遷)문제로 북청(北靑)에 귀양갈때 66세의 노구로 귀양 생활이 도합 13년이나 되었다. 그는 특히 금석(金石). 도서(圖書). 시문(詩文). 전예지학(篆隸之學). 묵화(墨畵)에 뛰어났고 서법도 독창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이룩한 명필가로 유명하다. 저서에 <완당집(阮堂集)>.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