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찬(金載瓚) 1746-1827
이조 순조때의 재상. 자는 국보(國寶). 호는 해석(海石)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연안(延安). 1774년(영조 50)에 진사(進士)가 되고 이해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81년(정조 5) 검열(檢閱)로서 <이문원 강의(離文院講義)>를 편집해서 왕에게 바쳤고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직제학(直提學)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 하였다. 99년(정조 23)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가 되었다.1805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거절하자 재령(載零)에 부처(付處)되었다. 이듬해 석방되어 다시 우의정에 임명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으며 12년(순조12)에 영의정이 되었다. 홍경래(洪景來)의 난때는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 이를 평정 기근과 병란으로 인한 혼란된 세태를 안정 시켰다. 18년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었다가 뒤에다시 영의정을 지냈으며 23년 영중추부사(嶺中樞府事)가 되었다. 순조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해석집(海石集)> <해석일록(海石日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