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Tchaikovsky, 1812 Overture Op.49)
Tchaikovsky, 1812 Overture Op.49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Vladimir Fedoseyev, conductor Moskow Radio Symphony Orchestra Alte Oper Frankfurt, 1991
Fedoseyev conducts Tchaikovsky '1812 Overture'
차이콥스키가 <1812년 서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의 일로 <이탈리아 기상곡>을 완성한 지 조금 뒤의 일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열릴 산업예술박람회의 음악감독이 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당시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이자 차이콥스키의 친구였으나,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혹평한 일로 한때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었다)의 의뢰 때문에 쓰게 된 작품이다. 경제관념이 다소 희박해 빚을 지기 일쑤였던 차이콥스키였던지라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어지간히 내키지 않는 작업이었던지 당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어떤 축전을 위해 작곡하는 것만큼 맥 빠지는 일도 없다’, ‘아무런 애정도 없이 쓴 것이어서 그리 가치가 없다’는 등 스스로 작품에 신랄한 혹평을 가하고 있다. 이런 곡이 오늘날 표제음악의 걸작 중 하나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작곡가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런 애정도 없이 작곡한’ 표제음악의 걸작 제목의 ‘1812년’은 이 해에 있었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전(러시아에서는 이를 ‘조국전쟁’이라 불렀다)을 가리킨다. 처음에 의기양양하게 진군하던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을 만나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이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혁명 때 작곡되었으며, 현재 프랑스 국가이기도 하다)와 제정 러시아 국가의 각축으로 표현되었으며, 결국 러시아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프랑스 악단이나 지휘자가 이 곡을 녹음한 사례는 거의 없다. 말하자면 이란에 마라톤 선수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어떤 면에서는 다분히 외면적이고 통속적인 효과를 겨냥한 작품이지만, 매우 극적이며 악상의 전개가 절묘해 표제음악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이 곡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다룬 음악이다. 말 위에 앉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바라고 있다. 이 곡은 교회 종과 대포 등 정규 관현악곡에서는 쓰이지 않는 특이한 악기(?)가 사용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 곡의 인기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초심자에게는 엄청난 극적 쾌감을 선사하고, 오디오 마니아에게는 음반과 음향기기의 재현 능력을 가늠할 잣대 중 하나로 여겨진다. 물론 실내에서는 대포를 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공연장에서는 보통 큰북으로 대체되며(이 경우에는 교회 종 파트도 대개 차임벨로 연주한다), 야외 공연에서는 군대의 의전용 대포를 빌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대포를 누가 쏘게 할 것이냐를 놓고, 이 경우에는 대포도 악기라는 이유로 음악가가 맡아야 한다는 의견과 대포는 어디까지나 무기이니 군인이 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군악대에서 한 명 차출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Antal Doráti conducts Tchaikovsky '1812 Overture' Antal Doráti, conductor Minneapolis Symphony Orchestra University of Minnesota Brass Band Cannons courtesy: U.S. West Point Military Academy Bells: Laura Spelman Rockefeller Memorial Carillon 1958
추천음반 이 곡의 경우 음반 선택은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생생한 음향효과(특히 대포소리를 얼마나 잘 잡아냈는가)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가장 먼저 에리히 쿤첼/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의 2001년 녹음(Telarc)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녹음도 대단히 뛰어나다. 이 연주가 음색이 좀 야하다고 판단한다면 네메 예르비/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89년 녹음(DG)도 들을 만하다.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 대포를 사용했으며 합창도 등장한다. 곡 자체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했느냐를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996년 녹음(Decca)이 특히 우수하다. 전반적으로 모든 요소가 조화로우며 강한 통솔력으로 세련된 연주를 들려준다. 좀 오래된 녹음이긴 하지만 효과적인 극적 연출과 돈 코사크 합창단의 힘찬 합창이 돋보이는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의 1966년 녹음(DG)도 빼놓을 수 없는 녹음이다.
글 황진규(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왔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0.05.0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24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