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musik

미완성 교향곡_ Symphony No.8 in B minor / Schubert

윤일란 2012. 6. 17. 17:43

 



Franz P. Schubert

                 Symphony No.8 in B minor

                            - 미완성 교향곡





Günter Wand cond.
Münchner Philharmoniker


      평생토록 슈베르트의 작품을 깊이 사랑했던 브람스는
      이 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음악은
      양식적으로는 분명 미완성이지만 내용적 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이 두 악장은 어느 것이나 내용이
      충실하며,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 감싸기 때문에 누구도 감동하지 않을수없다





1악장 : Allegro Moderato




2악장 : Andante con moto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리히텐탈(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초기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가곡의
왕으로 불리고 있지요.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부터 두드러져 8세 때 교회의 합창
지도자들로부터 성악•바이올린•피아노•오르간 등의 기초적인
지도를 받았으며 11세 때 궁정 예배당의 합창단에
들어갔습니다.
14세 때는 자장가를 작곡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고 하지요



* 비엔나에 있는 슈베르트 생가....

그 뒤 1814년 <실을 잣는 그레트헨>을 비롯하여 많은 가곡과 3곡의
현악 4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1815년에는 <들장미> <마왕>을 비롯한
약 145곡의 가곡과 2곡의 교향곡, 그리고 이 밖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페라•실내악•피아노곡•교회 음악•가곡 등 협주곡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걸쳐 있으며,
작품량도 그의 짧은 생애에 비하면 아주 많은 셈이라고 합니다.



청소년 시절의 슈베르뜨....
슈베르트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우리 인류에게 많은것을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타까운 천재의 요절이지요.

슈베르트의 일생은 예술가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입니다.
그 아름다운 선율로 만인의 가슴에 위안을 안겨 준 사람이지만
그 자신 이승을 산 세월은 31년밖에 안 도지요.
그 짧은 생애에 가곡만 해도 6백 곡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가 일생을 통해서 얻은 보수는 57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 사람입니다..
그 재능에 어울리는 무대에 오른 일조차도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미완성 교향곡 >은 그의 생전에는
한 번도 연주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얘깃거리가 되는 것은 얼마 동안 가정교사로 가서
피아노를 가르친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딸 카로리이네와의 연애 사건이다.
그 얘기는 영 화 <미완성 교향악>에서도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지만,
전기 작가들의 연구에서는 사실 무근으로 밝혀지고 있다.
로맨스는 없었다.
슈베르트는 그 귀족의 집에서 하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을 뿐이며,
비인에 돌아오자 불쾌한 경험을 잊어버리기 위해 친구들과
더불어 축배를 들었다.(옮김)



이 곡, 미완성은 1822년 10월 22일 슈베르트가 작곡에 착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관현악 총보를 만드는 작업을 가리키는
것이며,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피아노 스케치는 그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슈베르트는 1악장과 2악장을 작곡하고 나서 3악장 작곡을
시작했으나, 20마디까지만 관현악 편성 작업을 한 채 일단 작곡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 뒤 1823년 4월에 그라츠(Gratz)의 음악협회
회원으로 추천받은 슈베르트는 이를 수락한 뒤 감사의 뜻으로
교향곡 하나를 헌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지요.

이 작품이 끝내 미완성으로 남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다.
일단 갈수록 악화된
슈베르트의 병(1820~1821년 사이에 매독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을 근거로
드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슈베르트가 1828년에 사망할 때까지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워낙 다작의 작곡가였던 데다 건망증까지 심했던 슈베르트가 그냥
잊어버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