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musik

파이지엘로 내 사랑은 언제 오려나

윤일란 2010. 7. 7. 06:44

Giovanni Paisiello - Il mio ben quando verra
     
파이지엘로 내 사랑은 언제 오려나
Giovanni Paisiello 1741-1816
Soprano : Cecilia Bartoli
 
     
     
''Il mio ben quando verra'' from Opera ''Nina Pazza per amore''
''Il mio ben quando verra-내 사랑은 언제 오려나''
from Opera ''Nina Pazza per amore-사랑에 미친 니나''
Paisiello, Giovanni (1740-1816 IPaisiellot.)
내 사랑은 언제 오려나(Il Mio Ben Quando Verra)는 조반니 파이지엘로(1740 ~ 1816)의 아름다운 오페라 사랑에 미친 니나(Nina Pazza per amore)중 니나의 아리아이다.
불쌍하게도 정신이 이상해진 니나가 연인을 찾아 부르는 노래인데 18세기 나폴리 사람들은 이 니나의 슬픈 이야기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고 주역 가수였던 체레스테 콜테리니는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메조 소프라노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부르는 고풍스럽고 품격있는 이 아리아는 요즘에 들어도 온화한 느낌으로 사랑의 감정이 담뿍 배어 있는 듯 하다.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남자 성악가로서 이탈리아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최고로 인정한다면 여자 성악가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소프라노이다.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단연 세계 최고일 것이다. 다른 소프라노와 달리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Il mio ben quando verra`
a veder la mesta amica,
di bei fior s`ammantera`
la spiaggia aprica.
Ma nol vedo,no,il mio ben,
il mio bene,ahime`,non vien.
Mentre all`aure spieghera`
la sua fiama,i suoi lamenti,
miti augei,v`insegnera`
piu` dolci accenti.
Ma non l`odo. E chi l`udi?
Il mio bene ammutoli.
Tu cui stanca omai gia fe`
il mio pianto,eco pietosa,
ei ritorna e dolce a te
chiede la sposa.
Pian,mi chiama;piano...ahim`e!
no,non chiama,o Dio,non c`e`.
 
나의 사랑 언제 오나?
외로운 친구 보기 위해,
아름다운 꽃으로,
해변가 밝게 단장하리
안 오시나 나의 님
나의 님 어이 안 오시나?
산들바람 말하리
그의 사랑 또 그의 슬픔을,
상냥한 새들 가르쳐주리
감미롭고 부드러운 사랑을.
안들리네. 누구 들었나?
나의 님은 말없어라.
너의 믿음 지금은 사라져,
내 슬픈 울음, 산울림되어,
되돌아와 상냥하게 부르네.
나의 신부라고.
날 부르네; 들리는 듯!
오, 안들리네, 하느님 아무도 없네.
     
Cecilia Bartoli
소위 ''로시니 여결''(Rossini Heroine) 혹은 ''뉴 디바''(New Diva)라 불리는 성악계의 샛별 체칠리아 바르톨리. 그녀는 현재 줄리에타 시묘나토, 크리스타 루드비히, 테레사 베르간자 등으로 대변되는 메조 소프라노의 인맥을 잇는 강력한 개성과 음악성을 지닌 이 시대의 새로운 프리마 돈나로서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찬사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찬란한 스포트 라이트 속의 주인공입니다.
바르톨리는 1966년 이탈리아의 고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양친 모두 직업적인 성악가였던 탓에 어린시절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던 그녀는 특히 실바나 바조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벨칸도 창법의 기초를 닦는 등 성악가로서의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들을 전수받고 불과 8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푸치니의 ''토스카''에 양치기 소년으로 출연함으로써 생애 첫 데뷔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이후 성악의 산실인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진학,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인데, 그녀의 이름이 무명에서 벗어나 급속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오늘날과 같이 자리잡게 되는데는 동향의 대 선배들인 바리톤 레오 누치와 소프라노 카티아 리치아렐리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일찍이 바르톨리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간파했던 이들은 성악의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뛰어난 메조가 배출되지 못했던 수모(?)를 자국 출신의 이 나이 어린 후배가 깨끗이 씻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녀를 유럽 각국으로 위성방송될 특집 TV프로에 자신들과 함께 출연토록 주선했고, 여기서 이들과 함께 오펜바하의 <뱃노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이중창>등을 완벽하게 불러낸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그 빼어난 천재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불과 19살 때의 일이었는데, 이때 이 방송을 눈여겨 본 유럽 굴지의 오페라단에선 오디션도 없이 그녀를 초청하겠다고 제안해 나섰고 바렌보임, 아르농쿠르 등의 유명 인사들도 그녀에게 함께 작업할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단 몇 차례의 노래로, 그것도 실연이 아닌 TV방송으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은 선뜩 납득하기 힘든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쇄도한 요청 가운데서 그녀가 특히 기억에 남는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은 1989년 파리 오페라좌에서 열린 ''마리아 칼라스 추모 음악제''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그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는 마음으로 로시니와 모짜르트의 몇몇 아리아를 불러, 만장한 청중들로부터 수십분간에 걸친 기립박수를 받아내게 되었고, 이로써 그녀는 다시 한번 하루 하루 열뛴 성원속에 커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연주회도 역시 TV 전파를 타고 유럽 각국으로 위성중계 되었는데 이를 시청한 거장 카라얀이 그녀를 직접 전화로 초대해, 1990년 가을 짤스부르크 페스티벌에 올리기로 계획한 바하의 에 참여토록 할만큼 대단한 반향을 자아냈습다.
비록, 이 계획은 카라얀의 급작스런 서거로 말미암아 성사되진 못했지만 훗날 바르톨리는 그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음악가로서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남다른 성공의 길을 달려온 바르톨리의 최상의 특기로 내세울 수 있는 역은 무엇보다도 로시니의 최대 히트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여주인공인 로지나입니다. 이역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연기력도 연기력이려니와 막힘없이 잘 뻗어 올라가는 고음을 구사할 수 있는 완벽한 기교와 함께 앳되고 서정적인 기품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바르톨리는 마치 이역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이상적인 가창을 들려 주었습니다.
     
Paisiello, Giovanni (1740-1816 It.)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로 1740년에 타란토에서 태어나서 두란테에게, 1755-59년간에는 나폴리에서 아보스에게 사사하였습니다. 1760년을 지나서부터는 오페라 부파의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776년 그가 로시아에 일자리를 얻어 페테르스부르크로 가기까지는 이미 50곡을 작곡하였습니다. 1776-84년간 러시아에서 아카테리아 여제 (女帝) 궁정의 전속 오페라 악장으로 일했으며, 한 때 파리에서 생활하다가 불운한 만년을 나폴리에서 보냈습니다.
파이지엘로는 페르골레지와 더불어, 이 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로 모짜르트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베에토벤도 그의 아리아 주제로 변주곡을 썼었습니다. 작품으로는 오페라만도 100곡을 넘으며, 12곡의 교향곡, 6곡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 교회음악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