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장르별 음악자료

굿바이, 빌리진

윤일란 2009. 8. 24. 05:46

 

소설가는 세상의 상처를 찍어 문장을 만들고, 소리꾼은 누더기 같은 심장에서 소리를 길어 올리고, 화가는 세상 가장 뜨거운 피로 낙관을 찍는다. 흔히 예술가라 불리는 ‘창작중독자’들은 정수리에 중독자의 표식을 새긴 채 태어난다. 그들은 금단의 괴로움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중독자의 운명은 가혹한 것이어서,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마다 상처를 입는다. 깊이에의 강요, 무관심한 비난, 쉽게 수그러들고 말 환호. 수많은 예술가들이 극단적인 삶을 살다간 것은 그들의 선택이라기보다 운명이었다. 또 한 명의 창작중독자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났다. 기억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삶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잊을 수 없는 음악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 잭슨을 위해 마련한 특집이다. 그가 남기고 간 음반과 사운드디자인으로 잭코가 어좌(御座)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회상하다 보니 여기서는 마이클에게서 꿈을 보았던 아티스트들이 튀어나오고, 또 저기서는 그의 영면을 방해하려는 언론이 나타났다. 여기에 마이클 잭슨보다 앞서 죽음으로 아이콘이 된 디자이너들과, 단 한 명뿐인 아티스트를 위한 8장의 베스트 앨범을 보탰다.

굿바이, 빌리진.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해 단계별 맞춤형 악당을 차례로 무찌르는 것처럼, 영웅이 되기 위해 신이 낸 어려운 문제를 풀고 마침내 괴수를 물리쳐야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전설로 남기 위해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무대에서는 배꼽을 쥐게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돌부처보다 더 말이 없다는 개그맨처럼 마이클 잭슨의 무대는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었지만 삶은 그렇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놓은 지름 12cm짜리 원반 10개를 골라 그의 삶을 비춰 보았다.


음반해설 | 강일권 웹진 <리드머 닷넷> 편집장
사운드그래픽해설 | 이강현 GIG.IC 대표
에디터 | 정윤희(
yhjung@jungle.co.kr)
이미지 자료제공 |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제는 우리의 가슴 한 켠에 아린 추억으로 남은 오직 단 한 명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초롱초롱한 눈빛과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앳된 보이스로 노래하던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갓 내려온 꼬마천사와도 같았다. 본 앨범은 이렇듯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바탕으로 탄생했던 황제의 첫 번째 솔로앨범이다. 레이블의 주요 프로듀서로 활약하던 두 거장, 할 데이비스와 윌리 허치, 그리고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레온 웨어 등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했고, 그 멜로디를 지배하는 잭슨의 미성이 감성 깊은 곳을 건드린다. 또한 그의 아름다운 보컬로 리메이크된 빌 위더스, 캐롤 킹, 슈프림스 등의 곡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음악적 깊이를 논할만한 앨범은 아니었지만, 솔로 싱어로서 잭슨의 천재성과 가능성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무대 위 모습과는 반대로 잭슨의 유년기는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혹독하게 노래 연습을 시켰고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린 잭슨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본 앨범의 커버를 볼 때마다 유독 가슴이 더욱 아려온다.

로부터 3년이 흐른 뒤에 발표된 본 앨범은 마이클 잭슨의 네 번째 솔로앨범이자 모타운에서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는 74년도에 대부분 작업이 끝났지만, 그해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한 잭슨 파이브의 싱글 ‘Dancing Machine’의 인기가 장기간 계속되자 전략적으로 미뤄져서 75년에 발표되기에 이른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잭슨의 더욱 무르익은 보컬이었다. 특히 ‘One Day in Your Life’와 같은 발라드 트랙에서 그의 보컬이 지니는 호소력은 비슷한 또래의 보컬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크게 히트한 앨범은 아니었지만, 점점 깊어지는 잭슨의 소울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One Day in Your Life’는 81년에 리이슈되어 뒤늦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16살의 잭슨과 그의 형제들인 잭슨 파이브는 이 앨범을 끝으로 소울의 성지였던 모타운에서 나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된다.
모타운에서 나온 잭슨은 에픽 레코드와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약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끝에 발표된 황제의 다섯 번째 솔로앨범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걸작이었다. 소울, 펑크, 디스코,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산재되어있었음에도 전혀 산만하지 않고 완벽한 구성을 자랑했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명장 퀸시 존스와 잭슨의 찰떡호흡이 큰 역할을 했다. 스티비 원더, 로드 템퍼튼,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포스터 등 쟁쟁한 이들이 작곡한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존스와 잭슨 콤비는 아주 훌륭하게 조율해냈고 특히 본 앨범에서 처음 등장하는 저 유명한 잭슨의 보컬 싱코페이션이 앨범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 앨범은 잭슨에게 첫 번째 그래미상을 안겼으며, 달콤한 R&B 디스코 넘버 ‘Rock With You’와 잭슨이 작곡하고 특유의 팔세토 창법을 선보인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등 솔로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한 앨범에서 4곡 이상이 빌보드 팝 싱글차트 10위 안에 드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역 스타에서 진정한 음악스타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눈부시도록 강렬했던 전성기의 서막을 알린 이후, 바야흐로 시대는 80년대로 접어들었고 잭슨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던 전작을 뛰어넘어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완벽한 앨범이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퀸시 존스와 잭슨 콤비가 이룬 또 한 번의 쾌거였다. 특히 이번 앨범부터 잭슨이 대부분 곡의 작사•작곡을 맡기 시작하면서 보다 더 음악적으로 주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예전 앨범에서 작곡을 담당했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이 앨범에서는 세션으로 조력하여 그의 행보에 존중을 표했다. 타이틀에서부터 사운드와 비주얼에 이르기까지 호러블함을 강조한 본작은 과대망상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대표되는 가사가 더해져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잭슨 만의 독특하고 기괴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환상적인 베이스와 신시사이저, 그리고 잭슨의 보컬이 황홀한 삼합을 이룬 ‘Billie Jean’, 음악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타이틀곡 ‘Thriller’, 눈물 날 정도로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자랑하는 ‘Lady in My Life’ 등 수록된 모든 곡과 구성이 완벽한 본 앨범은 팝 음악의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는 물론, 후세에까지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이 앨범을 통해 마이클 잭슨은 드디어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전 세계 음악 팬을 전율케 했던 전작이 확실히 부담이 되긴 했을 것이다. 무려 5년 동안 준비한 끝에 새 앨범을 발표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당시 잭슨은 이 앨범을 위해 총 60여 곡이나 준비했었으며, 그 중 30곡의 녹음을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이를 세 장의 디스크에 담아낼 예정이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 명작을 빚어온 퀸시 존스의 결정에 따라 10곡 만을 엄선하여 발표하기에 이른다. 여하튼 이 둘의 조합은 파급력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음악적으로는 전작에 뒤처지지 않는 또 한 장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흥미로운 건 앨범 곳곳에서 의 여운이 느껴지지만, 음악적인 구성이나 스타일의 답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Liberian Girl’은 곡의 분위기와 장르는 180도 다르지만, 멜로디 라인에서 ‘Billie Jean’의 향수가 남아있으며, 세기의 라이벌이었던 프린스와 듀엣이 성사될 뻔했던 타이틀곡 ‘Bad’는 로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비트가 ‘Thriller’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영화로 따지자면, 1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속편을 본 느낌이다. 여하튼 본작 역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기록하면서 잭슨의 황제로서 권위는 계속해서 하늘을 찔렀다.

 

 

 

마이클 잭슨의 앨범 중 미국 음반 판매 역사상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세 장의 작품이 있다. , 그리고 바로 이 앨범 다. 판매량도 판매량이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높은 완성도의 앨범을 연속으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번 해가 바뀌었고 잭슨은 퀸시 존스와 결별하고 자신이 처음으로 제작을 주도하며 새로운 음악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시도의 주된 파트너가 바로 뉴 잭 스윙의 선구자 테디 라일리였다. 그리고 이들의 결합은 퀸시 존스와 함께했던 결과물보다 좀 더 트렌디한 댄스음악을 선보였는데, 리듬의 구성과 사운드, 그리고 멜로디 라인은 당시 나온 앨범 중에서 손으로 꼽을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했다. 와는 다르게 일부에서는 발표 당시 평가가 살짝 엇갈리기도 했지만, 뛰어난 앨범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이 앨범에서 처음 힘을 합친 테디 라일리는 추후 잭슨이 음악적 방향을 정하는데 핵심 조력자로서 큰 역할을 했으며, 이 앨범은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던 잭슨의 커리어에 최고점을 찍었던 작품이었다.

을 기점으로 한 번의 내리막도 없이 최고의 인기를 누린 잭슨이었지만, 이 앨범부터 그의 커리어 그래프는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더블 앨범이었던 이번 앨범은 일단 판매량 면에서는 여전히 성공적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본작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더블 앨범이다. 그러나 문제는 음악적인 부분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었다. 당시 잭슨은 93년 즈음 터진 13살 소년 성희롱 사건 때문에 그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또 한 장의 완벽한 앨범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전작의 일등공신이었던 테디 라일리는 물론, 역시 뉴 잭 스윙의 선구자였던 지미 잼 앤 테리 루이스, 동생 재닛 잭슨, 한창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달라스 오스틴, ‘R&B의 황제’라 일컬어지는 알 켈리 등 그 어느 때보다 호화 프로듀서 진과 피처링 진을 대동했지만, 사전 홍보와 기대에 비해 전작과 음악적인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분명히 대부분 트랙들은 준수했고, ‘You Are Not Alone’이라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킬링 싱글도 존재했지만, 여러 상황을 뒤엎고 팝의 황제로서 명예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의 성추행 혐의가 죽고 나서야 무죄로 밝혀졌다는 사실이 애통할 따름이다.

마이클 잭슨 본인도 에 대한 성과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2년 뒤, 리믹스라는 기법을 빌어서 다시 한 번 를 부활시켰다. 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으로 화제를 모았던 첫 싱글 ‘Scream’을 비롯한 ‘Stranger In Moscow’, ‘This Time Around’, ‘Earth Song’, ‘You Are Not Alone’ 등 전작의 대표곡 여덟 트랙을 힙합, 클럽 댄스, 팝-록 등 다양한 스타일로 리믹스하고 여기에 타이틀곡인 ‘Blood on The Dance Floor’를 포함하여 총 다섯 곡의 신곡까지 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리믹스 트랙들은 원곡의 매력에 미치지 못했고 전작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수록한 신곡들 역시 앨범을 구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Blood on The Dance Floor’는 바로 전작의 싱글 ‘Scream’의 연장선에 있는데다가 파워나 구성 면에서 더 뛰어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팬들의 실망은 더 컸다. 이래저래 90년대는 잭슨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강요하고 있었다.

연속된 앨범의 실패와 98년 독일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 해프닝, 그리고 성형 부작용 등으로 어느 샌가 팝의 황제에서 괴짜가 되어버린 잭슨은 불명예로 얼룩진 상황 속에서 90년대를 마무리하고 오랜 침묵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1년, 그는 통산 열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다시 황제가 돌아왔음을 천명하고자 했다. 이후, 무려 6년 만의 정규앨범이었다. 프로듀서 진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실력파 R&B•힙합 프로듀서들을 대동했고 음악적으로는 기존의 강렬한 댄스 넘버 대신 컨템포러리 R&B와 미드 템포의 펑키한 사운드를 앞세웠다. 오랜만의 복귀작 치고는 다소 평범한 감이 있었지만, 2000년대 초반의 R&B 스타일과 어우러지는 잭슨의 보컬 싱코페이션은 나름대로 신선한 맛이 있었다. 몇몇 지루한 트랙들을 제외하고 곡 수를 줄여서 구성을 좀 더 타이트하게 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어쨌든 황제의 차기 행보를 기대하게끔 하는데 성공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이 그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후, 잭슨은 힙합 뮤지션들과의 합작을 비롯하여 다양한 실험을 할 예정이었던 터라 안타까움과 슬픔은 더 커져만 간다.

작년 2월, 팝 음악계의 명작 가 발매된 지 25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엄청난 앨범을 어떤 형태로 재탄생시킬 것인지 상당히 궁금했다. 해답은 리믹스였다. 언뜻 생각하면 진부한 구성일지 모르지만, 리믹스에 선정된 곡과 리믹서로 참여하는 프로듀서 진의 명단을 보면 흥분할 수밖에 없다. 정말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두 프로듀서 윌.아이.엠과 칸예 웨스트, 그리고 천부적인 멜로디 감각을 타고난 싱어이자 프로듀서 에이콘이 황제의 명곡 중에서도 명곡을 다시 만지고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으니까.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The Girl Is Mine 2008’과 ‘Billie Jean 2008’이다. 윌.아이.엠이 리믹스한 ‘The Girl Is Mine 2008’은 원곡의 뛰어난 멜로디를 잘 살리면서 감각적인 신시사이저로 오늘날 색채를 입혔으며, 칸예 웨스트가 리믹스한 ‘Billie Jean 2008’은 기대에 약간 못 미치는 감은 있었지만, 원곡의 엄청난 아우라를 고려하면 고심이 느껴지는 리믹스였다. 마이클 잭슨은 다시 한 번 평생의 역작을 우리 곁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비록 떠나기 전 그의 모습은 황제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음악 팬은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의 음악을 플레이하는 걸 멈추지만 않는다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귀와 가슴 속에서 불멸의 삶을 살 것이다.

 

 

 

8인의 아티스트가 오직 한 명뿐인 ‘팝의 황제’에게 바치는 베스트 앨범.

에디터 | 이상현·정윤희, 사진 | 스튜디오 salt

팝의 제왕은 절정의 황금 장식 공연의상을 입고, 황금색 테가 둘러진 마이크를 차고, 조용히 누워서 이제 잠들었다. 나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서 언젠가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누군가의 인터뷰가 기억났다. ‘마이클 잭슨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꿈만 같다’라고. 역시 저버린 별의 아름다움을 늦게나마 알아채고 그리워한다. 커버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길을 가다가, 카페에서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걸음걸이가 느려졌었다. 이것은 마이클 잭슨의 발라드 베스트 앨범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명곡들 속에서 나는 조용하게 그를 기리기로 했다. 이런 기회가 고맙다.

자칭 ‘골든부시맨’이라는 이름을 달고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이경돈이, 발라드 가수로서의 마이클 잭슨을 추억했다. 스물 다섯살 청년에게 마이클 잭슨은 ‘You are not alone’을 부르는 모습이 더 익숙한 거다.

<오프 더 월(Off the wall)>로 시작해 <스릴러(Thriller)>로 정점을 찍은 ‘제왕’시절의 마이클 잭슨보다 ‘모타운(Motown)’시절의 어린 천재 마이클 잭슨을 기리는 앨범입니다. 변성기 전의 미성으로 부른 아름다운 노래들을 듣노라면 아무리 혹사당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빼앗긴 어린 시절이라 해도 마이클 잭슨 역시 그때가 아름다웠다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형 하기 전의 초콜릿색 피부와 해맑은 웃음, 북실북실한 ‘아프로’헤어스타일, 화려한 색으로 반짝거리는 판탈롱, ‘문워크’로 대중을 압도하는 성숙한 스타가 아닌 엄청난 재능으로 즐겁게 노래 부르는 귀여운 꼬마의 모습을 잭슨파이브(Jackson 5)곡과 솔로 곡을 섞어 담았습니다.

바흐를 들으면 ‘음악적 그리드’가 느껴진다던, 디자인보다 음악을 더 사랑하던 그래픽디자이너 이기준이 그린 마이클 잭슨이다.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시각화하는 이기준의 작업답게, ‘모타운(Motown)’ 시절 마이클 잭슨의 특징들을 정확하게 잡아내어 간결하고 상징적으로 그려낸 디자인이다.
마이클 잭슨은 떠났지만 그의 노래와 퍼포먼스, 예술성 등은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슈퍼볼드 타이포 작업이다.


영리한 픽토그래퍼 함영훈은 픽토그램이 지닌 직관성, 대표성, 그리고 규칙과 반복을 통한 표준성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해 픽토그램의 기능을 확장시켜 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영리함을 문자와 마이클 잭슨으로 옮겨와 군더더기 없는 작품을 완성해 주었다. 문자를 반죽해 하나의 기호를 빚어낸 함영훈의 앨범 커버 이미지는 하늘에 있는 마이클을 문자 그대로 아이콘화 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은 죽는 순간 어떤 얼굴을 떠올렸을까? 환호하는 팬들? 사랑하는 연인? 귀여운 자녀들? 아니면 죽음을 맞은 자신의 얼굴? 죽음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걸 미리 알지 못했을 잭슨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마주친 건 한번도 본적이 없는 죽음의 얼굴. 그는 맞닥뜨린 죽음의 익숙하지 않은 얼굴에 그저 의아했을 것이다. 오래 살지 못한 그 자신이 어째서 벌써 이 죽음의 얼굴을 만나야 하는지…. 그는 오래 살지 못했지만 전설이 되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선택할 수 없지만 후회 없이 사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다 보면 즐거움으로 꽉 찬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이클 잭슨처럼 전설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팝초현실주의 아티스트 마리킴은 자신만의 만화경으로 들여다 본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보내주었다. 그녀는 날렵한 눈매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그림들에 ‘마리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날마다 만화경 같은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커버에 담았으면 좋았겠지만 창백하고 많이 아파 보였던 후반시절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망가져가고 있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는 전혀 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들기만 해도 쓰러질 것만 같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적인 춤과 천재적인 노래, 그리고 정신은 아름다운 육체와 외모를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시훈은 그림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김시훈의 그림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그의 그림에서는 진한 커피 향기가 난다. 김시훈이 보내온 마이클 잭슨의 눈에 가득 고여 있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곱게 간 원두에서 내린 에스프레소다.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심장을 곱게 갈아 내린 그의 음악이다.

6살 때인가 부산 바닷가 수영장의 야외영화관에 설치된 천막 위로 마이클 잭슨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전혀 색다른 리듬과 비트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추던 마이클.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상당히 어린 시절이었지만 수십 명이 몰려들어 의자도 없이 영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6살의 나에게,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춤은 아주 쇼킹한 볼거리였다. 시간은 흘러 2009년, 마이클 잭슨은 우리 곁은 떠났지만 지구와 전 인류, 그리고 평화를 노래했던 마이클의 음악과 그의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계속 울리고 있을 것이다.


‘손맛글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캘리그래퍼 노용수는 유려한 손글씨가 일품이다. 그의 캘리그래프는 매일 다른 모습으로 블로그(blog.naver.com/motiva)에 업데이트 되는데, 이 부지런함이야말로 손맛 진하게 느껴지는 캘리그래프의 비결이 아닐까.
마이클 잭슨은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코가 아버지를 닮아서 수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의 코가 만들어졌는데, 하얀 피부나 수술한 얼굴이 지금의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백인의 모습이지만 내면에 있는 흑인특유의 창법과 가창력, 그리고 유연한 몸에서 나오는 춤은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에 오를 수 있게 된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시절… 누가 봐도 흑인이었던 모습을 생각하며 디자인했다.

최지웅과 함께 프로파간다의 또 하나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박동우. 손맛이 느껴지는 일러스트와 타이포그래피를 재료로 간결하고 힘 있는 그래픽을 완성하는 그는 이번 작업에서도 거친 입자가 살아있는 일러스트를 통해 마치 마이클 잭슨의 사진 앨범을 들춰 내듯 그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복원했다.

신비한 눈빛을 가진 파워풀한 마이클 잭슨의 클로즈업 흑백사진과,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였던 만큼 80년대 풍의 촌스럽고 장식적인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해봤다. 앨범 타이틀은 내가 선정한 베스트앨범의 첫 번째 트랙인 ‘I want you back’로 정했다. 고인이 된 팝의 황제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띄운다. “마이클, 난 당신이 돌아와주길 바래~!”

‘필살 디자인’으로 영화 포스터디자인 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프로파간다의 그래픽디자이너 최지웅. 고전적 타입페이스의 아름다움을 아는 똑똑한 이 청년은 이번 작업에서 제 특출 난 장기를 살려 미려한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했다. 흑백 사진과 어울리는 황금색의 ‘I want you back’에, 마이클 잭슨을 흠모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